아주 오랜만에 넷플릭스에 들어갔다. 무거운 영화도 잔인한 영화도 머리 쓰며 봐야 하는 영화도 아닌 잔잔하고 편안한 영화가 보고 싶었다. 최근 등록에 스토리가 대략 짐작될 만한 노년의 이야기 '소풍'이 있었다. 그날은 왠지 소풍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원로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 버렸고 영화가 끝날 때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생이 소풍일까 이 생을 마치고 떠나는 것이 소풍일까...
영화 '소풍' 정보
장르 : 드라마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국가 : 대한민국
시간 : 114분
개봉일 : 2024년 2월 7일
감독 : 김용균
출연 : 나문희 (고은심 역), 김영옥 (진금순 역), 박근형 (정태호 역), 류승수 (송해웅 역)
영화 '소풍' 줄거리
학창시절의 친구이면서 사돈지간인 은심과 금순. 은심의 아들 해웅은 사업 자금으로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며느리는 손녀의 해외 유학자금을 요청한다. 은심이 자신을 물주로만 보는 아들 며느리에 화가 나 있던 차에 오랜만에 금순이 고운 한복을 입고 집에 놀러 온다.
화가 나 있던 은심은 금순을 데리고 점심을 햄버거로 해결하는데, 키오스크 주문은 어떻게 되었다지만 음료는 없고 햄버거는 대체.. 몇 개야? ㅎ 난감한 표정 후에 척척 햄버거를 장바구니에 담는 모습이었는데 은심과 금순이 목이 메어 꾹꾹 햄버거를 먹는 장면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 요즘 어르신들이 어디 가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기는 참 어려울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은심은 금순과 함께 수십 년 동안 찾아가 보지 않았던 고향 남해로 내려간다. 바다가 보이는 깔끔한 시골집에서 금순은 텃밭을 가꿔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며 살고 있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친자매처럼 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였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학창 시절의 친구가 노인이 되어 두 손 꼭 잡고 다니는 모습에 왜 가슴이 울렁였을까. 모르겠다. 저 모습만으로 그냥 가슴이 찡~하면서 가슴이 울렁였다. 노년이 된 찐친. 그들은 서로가 어떤 의미일까.
은심은 학창시절 자신을 짝사랑하던 남학생 정태호를 만나게 된다. 30~40대에 만나는 첫사랑과 50~60대에 만나는 첫사랑 그리고 70~80대에 만나는 첫사랑은 각각 다른 느낌일 듯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였는데 영화 '소풍'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는 학창시절의 친구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더니 60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학창 시절과 변함이 없었다.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그때와 같이 말다툼을 하고 질투를 하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80대를 눈앞에 둔 70대의 어르신들. 인생을 치열하게 자식 키우며 살아온 내공일까. 파릇파릇 젊었던 얼굴에는 주름이 한가득이고 곱게 빗어 넘긴 검은 머리는 백발이 되었지만, 그 나이에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여유가 보인다. 흠이라도 잡힐까,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 서로 재고 따지고 견제하는 모습이 이 세 친구들에게는 없었다.
자식 키우며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있을 법한 일들을 서로 담담히 얘기하는 모습에, 저 나이가 되면 인생사에 초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니까 그렇겠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그런 여유와 너그러움을 갖게 된다면야 나이 드는 것도 나쁘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내 것만을 지키고자 독이 바짝 오른 '물질의 노예'로 추하게 나이 드는 것이 아닐까.
노년에 만난 친구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미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신체의 기능은 이곳저곳 고장이 나고 있었다. 요즘은 부모님도 자식과 함께 살기를 원치 않고, 자식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않다 보니 일인가구, 독거세대가 많다.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고, 혼자 사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다 보니 영화 '소풍'의 이야기가 먼 얘기, 남의 얘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파킨슨 진단을 받은 은심이, 골다공증으로 허리 수술도 하지 못하고 누워서 대소변 실수를 하는 금순이, 뇌졸중증이 많이 진행된 태호.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망가져가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 정신은 온전한데 몸은 어린애처럼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살아온 인생의 흔적을 정리하며 은순과 금순은 담담히 소풍을 가기로 한다. 예쁜 옷 곱게 차려입고 둘이 손 꼭 잡고 중간에 김밥도 먹으며 선재암으로...
영화 '소풍' 감독과 출연배우
영화 '소풍'의 김용균 감독은 '와니와 준하', '분홍신', '불꽃처럼 나비처럼', '더 웹툰 : 예고살인', '괴담만찬'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단독 감독으로는 '예고살인' 이후 11년 만이다.
영화 '소풍'은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님이 주인공이면서 이 분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영화이다. 김용균 감독은 이 분들의 마음을 감히 짐작하기 힘들어 연출의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분장이 필요 없이 곱게 연세 드신 연기파 원로 배우들은 그들의 얘기를 풀어가듯 담담히, 그러나 관객들의 가슴에는 강한 울림을 주는 연기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거기에 영화 '소풍'에는 임영웅의 자작곡 '모래 알갱이'가 OST로 삽입되어, 엔딩 장면을 더욱더 애잔하고 가슴 찡하게 해 주었다. 인생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OST와 맞물려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듯했다.
동안 얼굴, 방부제 미모, 성형 미인이 대부분인 연예계에서 이런 울림을 줄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로 배우들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활동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관리 잘하셔서 늘 건강하세요.
영화 '소풍'을 보고 나서
무엇이 영화 '소풍'에 끌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과 비슷한 연배인 부모님이 생각났고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나이 먹어서 겪게 될 미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부모님을 생각해도, 나를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언젠가는 그동안 살아온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홀가분해질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는 것. 그때가 되었을 때의 심정을 감히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만 가는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본 관객의 가슴은 많은 울림으로 요동쳤을 것 같다. 남녀노소 불문 그 나이대에 맞는 울림으로. 금순이 말했던 '아프지 않게 가는 주사'와 선재암으로의 소풍이 초고령화시대에 화두를 던진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금순과 은심이처럼 말하는 미래의 나를 보게 되었다.
현생을 소풍 왔다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저 세상을 소풍처럼 즐겁게 가는 곳이라 생각해 보는 것도 죽음을 대하는 건강한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코코'를 보고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영화, 소풍.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 않고서도 누구나 한 번씩 보기를 적극 추천하고픈 영화이다.
인생 영화 코코! 내일 죽는다면 코코를 다시 보고 평화로움을 유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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