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면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있다. 내게 자산어보가 그런 영화 중 하나다. 바다 생물을 공부하고 싶은 유배 온 양반과 알려주지 않으려는... 글공부에는 관심 많은 상놈의 티키타카. 이들 속에서 근대 어류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자산어보가 탄생하였다. 머리와 마음이 건강해지는 영화. 이런 영화는 흥행 대박 났어야 하는데. 아쉽다. 아직 못 보신 분들께는 강력 추천합니다!
장르 : 드라마, 시대극
등급 : 12세이상 관람
러닝타임: 2시간 6분
국가 : 대한민국
개봉일 : 2019년 8월 19일~2019년 10월 31일
감독 : 이준익 감독
출연 : 설경구(정약전 역), 변요한 (창대 역), 이정은 (가거댁 역), 민도희 (복례 역)
흑백 사진을 넘기며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들을 준비하고, 출발~
자산어보 감독, 출연배우
이준익 감독은 아나키즘, 퀴어, 코미디 시대극 등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한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왕의 남자, 황산벌, 사도, 동주와 라디오 스타로 이미 잘 알려진 분으로,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설경구 배우 역시 마찬가지.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TV를 잘 보지 않던 내게 어느 순간 꽂혀서 인생 드라마가 된 '미스터 선샤인'. 그 드라마에서 김희성 역으로 출연했던 변요한. 그 이후 미처 몰랐던 그의 존재를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되었다. 역시 기본이 다져진 배우라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빛을 발했었나 보다. (그 유명했던 '미생'에도 출연했다는데, 난 그 유명했던 '미생'을 보지 않았다. ㅎ)
그런 면에서 이정은 배우도 빼놓을 수가 없지. 정말 기본기 탄탄한 배우다. 역시나 변요한 배우처럼 내겐 미스터 션샤인에서 처음 발견한 이미 빛났던 보물이다. 자산어보에는 미스터 션사인에 출연했던 배우가 4명이나 출연하는데 그것 또한 참 반갑다. 변요한, 이정은, 조우진, 김의성.
자산어보 줄거리
조선 정조에서 순조로 이어지면서 서학을 하는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는 수난을 당한다. 정약종은 처형이 되고, 정약용과 정약전은 각각 강진과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흑산도에 도착한 정약전은 가거도에서 시집 와 지금은 과부가 된 가거댁네서 머물게 된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창대라는 고기잡이 청년을 알게 되는데, 그는 과거 장 진사가 흑산도에 머물 당시, 마을 여성과 정을 통해 얻은 서자로 사실상 양반의 피가 흐른다. 하지만 아버지 장 진사는 창대가 어릴 적에 몇 번 들여다봤을 뿐 발길을 끊은 지 이미 오래였고, 어려서부터 그런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출세하고 싶었던 창대는 글공부를 열심히 한다. 해서 외향과는 달리 평소 성리학 등 글공부도 열심히였고, 고기잡이로 얻은 바다 생물과 바다 생태에 대한 지식 또한 풍부했다.
씨만 중허고 밭 귀한 줄은 모르는 거 말이여라.
씨 뿌리는 애비만 중하고 배 아파가꼬 낳고 기른 애미는 뒷전인디.
인제 자식들도 애미 귀한 줄 알아야 써.
<가거댁의 명대사>
정약전은 그런 창대의 지식을 도움받아 어류도감을 쓰고자 한다. 글을 가르쳐 줄테니 물고기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달라는 정약전의 제의에, 창대는 서학을 하는 대역죄인에게는 배우고 싶지 않다고 거절한다. 그러나 양반 같지 않은 정약전의 행동과 말, 또 일련의 사건들로 결국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그 둘의 티키타카는 시작된다.
직접 물고기의 배를 가르고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는 정약전과 정약전의 가르침으로 학식이 날로 높아지는 창대. 그러는 사이 이 둘 사이의 끈끈한 우정은 참 훈훈하게 두터워졌고, 정약전의 연구는 흑산도 주민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가거댁과 정약전 사이에는 자식도 둘이나 태어났고, 창배도 어릴 적부터 티격태격하던 마을의 복례와 혼인도 했다.
이후 정약전은 유배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육지에서 가까운 우이도로 옮기고, 그 즈음 창대는 장 진사의 권유에 따라 과거 볼 기회를 얻게 된다. 세상에 출세하기 위해 정약전과 함께하지 않는 창대에 정약전은 크게 분노했다.
창대는 과거에 합격하고 장 진사의 추천으로 나주 목사 밑에서 일하게 되나, 현실의 부정부패를 눈으로 직접 보며 환멸을 느끼게 된다. 내 배를 불리고자 벼룩의 간까지 빼 먹는 벼슬아치의 행태에 분노하여 아전의 목을 졸랐던 사건으로 결국은 흑산도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배운대로 못 살면 생긴 대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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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알아야 물고기를 잡응께요.
홍어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앙께요.
<창대의 명대사>
도중에 정약전을 보러 우이도에 들른 창대는 뜻하지 않게 장례식 조문을 하게 된다. 긴 유배 생활로 건강이 나빠진 정약전이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완성하고 세상을 뜬 것이다.
정약전이 남긴 자산어보와 편지를 가지고 흑산도로 돌아가는 창대와 그의 가족. 정약전의 편지를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기는 창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흑산도를 배경으로 잔잔하게 일렁이는 흑백 바다와, 덤덤하고 투박하게 읊조리는 정약전의 목소리가 참 조화로왔다. 그렇게 흑백 화면이 컬러 화면으로 바뀌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않는 자산(玆山)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정약전의 명대사>
자산어보를 보고 나서
현란한 그래픽과 최점단 장비로 촬영된 블랙버스터급 영화가 쏟아지는 요즘,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 잔잔하게 연출된 자산어보는 관객들에게 흑백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운치를 흠뻑 주었다. 거기에 시대극임에도 정약전과 창대, 가거댁의 대화는 티를 내지 않는 웃음 포인트를 툭툭 던져줬고, 그들의 대화 내용에는 삶의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창대가 본 출세한 세상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매번 느끼지만, 벼슬아치들의 부정부패와 뻔뻔함은 뿌리 깊은 역사를 두고 있는 듯하다. 마을에 슬픈 일이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고동 껍질이 소리 내서 운다던 창대. 더이상 고동 껍질이 소리 내 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양반 같지 않은 양반과 상놈 같지 않은 상놈의 스승과 제자로서의 우정. 그 당시의 신분이나 나이로도 그 둘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아주 훌륭한 스승과 제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도 진한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 마음이 건강해지고 뇌가 건강해지는 느낌의 영화다.
자산어보는 개봉 첫날 3만 명대를 동원하며 1위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 코로나 19, 그 여파로 인한 극장 관람료 인상 등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시기를 잘못 만난 영화라 생각하고 싶은데, 인스턴트식이나 간편식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 너무 건강식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흥행 대박이 났어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고 아쉽지만, OTT서비스에서는 관객이 꾸준하게 즐겨찾는 영화이길 바란다. 자산어보 응원합니다!
인생 영화 코코! 자산어보와는 또다른 평화로움, 잔잔함, 행복 힐링영화 추천!
인도 영화 RRR : 자산어보와는 정반대의 영화. 미친 듯 통쾌하고 유쾌한 영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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